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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받은 가정 내 가문을 빛낸다.

플라톤은 한 가정의 두 기둥을 남편과 아내로 비유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 사이에 맺어진 사닥다리를 타고 자라는데 그 사닥다리가 사랑의 끈으로 묶여져 있으면 아이들은 안정감 있게 자라나고 사닥다리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불안정하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안정된 삶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그림을 그리게 하고 사랑하는 법을 올바르게 배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산을 받은 자녀는 온전한 가능성의 그릇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은 언어를 배우고, 생활을 배우고, 모든 것을 배우는 현장의 학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매일 반복되는 학습의 기회가 아름다운 교훈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픔으로, 고통의 날들로 주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일보다 더욱 관심을 갖아야 되는 일이며,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모의 습관과 행동의 그림자가 자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성장도 일어나야 한다. 가정의 지도자인 부모는 아이들이 자라나 새로운 가정을 꾸밀 때, 세워질 가정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한 성경에 대해 믿음으로 행함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정이 활력을 찾고 살아나야 된다. 모든 사람들의 상처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흔들리는 가정, 흔들리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가정에서의 대화가 언어폭력 속에 무시와 거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게 된다면 가정에서 상처를 입으며, 그 상처를 받으며 자라난 청소년은 문제의 청소년이 된다. 그가 자라 어른이 되면 그가 속한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단체든 어느 곳에서나 분노의 분쟁이, 분열이 싹트게 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시작된 문제가 사회, 정치, 교육 문제로, 나아가서 교회 문제까지도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대부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치유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부부 관계가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신의 자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느끼게 되면 자식들 앞에 용서를 빌고 변화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열매는 내 가정도 행복 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상처가 치유되면, 가정이 달라지고, 활력을 찾게 된다. 무기력하고 탈진되었던 시간들이 변해서, 이 시대에 본인 스스로에게, 가족들에서, 상처 난 이웃에게, 그가 있는 모든 곳에서 적절하게 쓰여질 사랑을 체험하게 되어 웃음이 살아납니다. 확신이 서게 됩니다. 그렇게도 밀려오던 분노가 점점 가라앉게 되면, 상대적으로 사랑이 증가한다.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 마음속에는 좋은 마음이 자리 잡기가 힘이 든다. 별 문제가 없는 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 마음속에서 밀려오는 분노나 고통의 감정을 통해 마음속에 평안이 거할 자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처의 치유는 분노의 마음을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바꿔줍니다.

치유는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본인 스스로가 분명히 보게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결단하도록 도와준다. 치유과정을 통해 지금껏 자신을 괴롭혀온 어두움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고, 왜 이제까지 어두움 속을 헤맬 수밖에 없는가를 자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옛날과는 다른 측면에서 다른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그림자를 치유 받기 전에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서 대인 공포증을 느끼던 사람도, 어두운 그늘을 치유 받고 난 후에는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상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를 향한 분노가 사라진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 동정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마음의 치유는 변화를 가져옵니다. 치유 받지 못할 때에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반면, 치유 받고 난 후에는, ‘저 사람은 무슨 아픔이 있기에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까’하고 생각하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하게 됩니다. 즉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것만큼 마음속에 분노가 줄어들고 분노가 약화되는 만큼 생명의 에너지가 허비되지 않고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현대의학도 분노로 빠져나가는 생명 에너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내가 치유되면, 정신이 건강해지고, 산만했던 마음과 분열되었던 마음은 수준 이상의 창의력과 능력이 살아나고, 여러 갈래로 갈라졌던 마음이 하나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의 환희가 솟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모든 일이 형통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도 괴롭히던 육신의 질병도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치유되는 일들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키워오면 올수록,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하고, 탈진 상태가 오지만, 변화된 모습 속에는 고통당했던 경험이 능력이 되는 것을 통해 치유의 능력자가 된다.

가정 속에서 내 모습은 치유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언어가 모범이 되고, 생활의 습관이 모범이 되어지며, 자상한 부모의 사랑이 나타나게 될 때, 자녀가 가정을 가장 편안한 안식처로 느끼게 되고, 행복이라는 것을 찾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이 치유되면 천대까지 가문을 빛낼 축복 받는 내 가문이 될 것이다.

중앙신학대학원 대학교 상담학과 김재만 교수 (중앙총회 신문원고2006년 게재)